오전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서 아침 일찍 일어나 소설 속 앤이 자주 찾곤 했던 캐번디쉬의 해안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이라 사진기를 든 손가락이 얼 정도로 추웠고 강한 바닷바람과 옅은 비마저 왔지만 꿋꿋하게 사진기와 눈에 그 풍경을 담아왔다. 붉은 해안선을 따라서 무서운 기세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자꾸만 눈길을 끌어당겨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셔터만 수십 번을 눌러대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아침 식사를 하려고 캐나다의 대중적인 도넛 전문점, Tim Hortons 를 찾았다.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 친구들이 던킨도넛을 보고 piece of crap 이라고 혹평을 하곤 했기에 얼마나 맛이 좋은지 늘 궁금했었다. 사실 던킨도넛의 제품들이 매우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몇몇 나라에서 워낙 상업적으로 성공했기에 브랜드 파워가 그 맛을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잘 나가는 도넛 몇 개와 뜨거운 원두커피 두잔을 주문해 놓고 사진부터 한 장 찍고 맛을 보았는데, 과연 맛있었다. 빵의 질감도 좋았고 단맛도 내 입맛에는 던킨보다 훨 좋았다. 3년 전 한국에도 들어간 크리스피 크림은 질감은 좋지만 너무 달아서 두 개 이상을 먹기가 어려운데 서너개를 먹어도 더 먹고 싶은 걸 보니 과연 캐나다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브랜드다 싶었다.
그 동안 마신 음료수 공병들을 모두 반납하고 그 돈으로 차에 기름을 넣었다. 공항에 가는 동안 길을 잘못 들어 좀 돌아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을 했다. 나흘간 우리를 PEI 곳곳에 데려다 준 고마운 매트릭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사진도 한방 찍어주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PEI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흐린 하늘 아래로 보이는 섬의 풍경이 나흘간 열심히 돌아다녔던 탓에 무척 친숙하게 보였다.
한시간 가량 비행을 해서 다시 몬트리올 상공에 진입을 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답게 큰 빌딩은 없지만 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도시다.
몬트리올과 PEI를 오갈 때 탄 작은 비행정이다. 덩치가 작아서 엔진 소음이 정말 시끄러웠다.
몬트리올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 파일들을 정리했다.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니 여행을 다녀온 것이 좀더 실감이 났다. 나흘간의 꿈 같이 나른하고 달콤한 여행,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아내와 20년 후에 다시 찾자는 약속을 했는데 그 때도 이런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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