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사람들 구경에 넋을 잃곤 한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각기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지고 이 작은 섬, 맨하튼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경이롭기 때문이다. 인종 뿐 아니라 직업, 신분, 국적 등의 용광로 같은 뉴욕시에서는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철을 타면서 길을 걸으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계속 그들과 같은 숨쉬고 부대끼면서 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사람들에 대한 의문과 궁금함이 끝도 없이 솟아난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의기소침했던 이유는 엄청나게 높은 집세와 물가, 그리고 생각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사실 등이었다. 그러면서도 좌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하루씩 살아가는 사람부터 일년에 연봉이 십수억원은 될 월스트리트의 주식 중개인이까지, 삶의 수준이나 질이야 어떻든 간에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공원 밴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씹어넘기면서 그들이 하는데 난들 못하란 법이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궁금했던 것이 많이 버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수입이 적거나 일정치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살인적인 물가를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인 가였다.
그 때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나고 여전히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저소득층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열평 남짓한 아파트에 열 명이 넘도록 사는 중국 이민자들도 많고 아예 집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고, 시에서 제공하는 저소득층 임대 아파트도 매우 많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저소득층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제법 여유롭게 사는 뉴요커들이다.
내가 사는 골목은 일주일에 4번이나 시에서 거리청소차량이 나와서 거리를 쓸고 지나간다. 청소차가 나오는 시간, 즉 오전 8:30부터 10:00시까지 한시간 반 동안은 청소하는 쪽에 차를 주차하면 안되는데 주차할 공간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한쪽에 더블 파킹을 허용해준다. 10시가 넘어서 차를 원위치(!)시키지 않으면 100불 정도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티켓을 받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침 8시 27분이 되면 사람들이 어디선가 일제히 나와서 차를 옮기고 사라졌다가 9시 57분이 되면 다시 일제히 나와서 차를 원위치 시키고는 사라진다. 아침 10시면 업무상 가장 바쁜 시간대인데 주중에 4번이나 이렇게 집에 붙어있는 이 사람들은 뭘까? 무슨 일을 하길래 연봉을 얼마나 받길래 이런 물가 비싼 데서 집도 차도 유지하면서 아침 피크타임에 집에 있는 것일까? (내 경우는 맨하탄에 사는 대가로 차를 처분해야 했다 ㅜㅜ)
요즘 나는 아침 출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점심을 싸들고 일하기 좋은 빌리지 근처(맨하탄 월스트리트와 미드타운 중간의 집세가 무지하게 비싼 지역)의 카페 같은데 가서 일을 하는데 거의 어디를 가든 맥북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람들이 가득히 들어차 있다. 그리고 척 봐도 그들 중 많은 수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다. 제법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낮부터 커피샵에 틀어박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프리랜서들이거나 근무환경이 나처럼 매우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있는 티를 팍팍 내면서 자유롭게 일을 하는 것일까? 얼마를 받으면 빌리지에 살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미혼이면 연 수입 7~8만불 이상은 되어야 그 동네에서 집세를 내고 수준 있게 살 텐데 말이다.
아직 그 궁금증을 풀지는 못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수입을 가지고 그 정도 여유 있는 삶을 산다면 나도 그렇게 살지 못하란 법이 없다며 늘 스스로를 격려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2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런... 윌 스미스(Will Smith)의 Pursuit of Happyness 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 Chris가 빨간 페라리를 몰며 행복해 보이는 주식 중개인, Jay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I got two questions. What do you do and how do you do it?” 내일은 나도 좀 물어보고 그들의 비결이라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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