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을 많이 하고 사는 편이다.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물론 상당한 왜곡이 있겠지만, 시간 순으로 나열이 가능하다. 사람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시원찮으나 서사나 이미지는 상당히 세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든가 가장 소중 기억을 들라고 하면 상당히 난감하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순간순간이 그렇게 쉽게 추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느 특정 시점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수도 없이 누적되어 있는 기억의 파편들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그것은 외가댁 안방 한구석에 있던 외할아버지의 병석이다. 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많이 편찮으셔서 방한구석에 병석을 만들어두고 링거 주사를 맞으시다가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