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책가방을 던져 놓은 채 곧장 뒷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혼자서 혹은 친한 친구 한둘을 데리고 풀, 벌레, 나무 등 자연을 관찰하고 놀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시골에 놀러가면 집 뒷산에서 못보는 자연환경에 설레이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미국에 사는 지금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달래를 참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달래무침은 매콤한 양념과 상콤한 달래향으로 봄과 함께 기다려지는 우리집 특미였다. 내가 8살인가 9살이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뒷산으로 놀러간 나는 땅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를 찾다가 달래 몇뿌리를 발견했다. 신이 나서 캐어간 달래로 어머니께서는 뒷산에도 달래가 있더냐 신기해하지며 한줌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두세번을 그렇게 달래를 캐어갔는데 어느날 그곳엔 나즈막한 막대들이 여기 저기 꽃혀있었고 막대들은 노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잠시 뒤 나는 어린 마음에 겁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몇걸음을 뒷걸음을 치고 난 후에 바라본 그곳은 분명히 주변의 수풀과는 달라보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뒷산의 인적 드문 곳에 만들어둔 듬성듬성하긴 했어도 제법 넓직한 밭이었다.
발톱 아래로 멍이 들도록 내리막 산길을 줄행랑 치던 내 작은 머리는 어째서 밭을 보지 못하고 달래만 보았는지에 대한 자책감과 그로 인해 누군가의 밭을 망쳤다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부끄러워서 어머니께는 말도 못하고 한동안 뒷산에 가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마 세상물정 모르던 그 때 어찌보면 인생을 좌우하는 교훈을 배운건지도 모르겠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 라는 격언이 내게는 "달래밭을 보지 못하고 달래만 본다" 로 기억된다.
집 앞을 지나다 보면 주택들 사이로 고추와 상추가 드문 드문 보이는 정원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만져보려다 안쪽으로 유심히 살펴보니 한국에서 오신 듯한 할머니께서 밭을 가꾸신 거였다. 그리곤 문득 기억속 뒷산 달래밭이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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